1. “우리는 카드를 섞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최근 세스 고딘의 롱블랙 인터뷰에서 인상깊었던 문장이다. 창업을 하고 나니 갈수록 카드가 쥐어지길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 되었다. 나름 주도적인 성격이라 생각했지만, 원하지 않을 때에도 카드를 직접 섞어야만 하는 상황은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고역이다. 끌려가지 않고 어디로 나아갈지 스스로 결정하는 일, 게다가 개인도 아닌 조직이 나아갈 길을 결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무겁다.
  2.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무게를 견디다보니 자연히 마주치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가’. 세스 고딘은 한국이 60년 동안 반복해온 ‘열심히’가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몸으로 밀어붙이는 반복의 열심함 말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가’에 대한 기준도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정말 말 그대로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지’를 생각했다면, 지금은 ‘미래를 궁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지’에 가까운 것 같다.
  3. 세스 고딘이 다시 정의한 ‘열심히 일하는 것’은 ‘두려운 일’을 하는 것이다. 신규 서비스를 운영하며 돌이켜보면 두려움을 마주했던 순간이 정말 많다. 피할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모르는 기술 용어 앞에서, 처음 해보는 협상 자리에서, 확신 없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등, IT 서비스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던 내가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해 온 시간 전체가 그런 과정이었던 셈이다.
  4. 가장 공감되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구분하지 못해 두려운 일을 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력은 ‘상황’이지만 달에 가는 건 ‘문제’라는 비유가 특히 와닿았다. 중력은 내가 바꿀 수 없지만, 달에 가는 방법은 풀릴 수도 있는 문제이라는 것이다.(물론 풀기 쉽지 않겠지만)
  5. 풀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문제를 ‘바꿀 수 없는 상황’으로 인식해버리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대부분의 문제상황은 ‘문제’와 ‘상황’으로 분리할 수 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상황만 보고 좌절하고 고민에 빠지는 건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한다. 물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6. 특히 세스 고딘은 문제와 상황을 구분짓지 못하고, 문제를 상황으로 착각하는 이유로 시간, 사회, 정체성 세 가지를 꼽았다. 지나온 시간이 아까워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서,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 때문에 새로운 결정 앞에서 주저앉게 된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합리적이지 못한 결정을 했던 순간들은 이 세 가지 원인들이 얽혀있었던 것 같다.
  7. 혁신은 재능이 아니라 훈련이고, 그 훈련을 지속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연료’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내 삶의 기준이 되는 것 말이다. 혁신이 재능이 아닌 반복과 노력의 영역이라면, 오히려 누구든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8. 그가 거듭 강조한 단어는 ‘주체성agency’이었다. 당신보다 더 유명하거나 부유하거나 잘생긴 사람은 언제나 존재하니, 대체 누구를 앞지르겠다는 거냐고 그는 되묻는다. 기준과 목적이 분명하다면 다른 이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 그가 정말 묻고 싶은 건 하나다. 당신 일의 목적은 무엇인가.
  9. 아무도 읽지 않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는 시작조차 하지 않게 된다고 그는 지적한다. 누군가가 나를 인정하고 선택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말한다. 일단 무엇을 할지 선택했다면, 그 일을 힘껏 사랑하라고. 바로 그때부터 주체성은 시작된다는 것. 자신의 일을 스스로 선택하면 자유와 함께 책임도 생기는데, 많은 이들이 이걸 원하지 않는다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탓할 수 없고 자신의 감정에도 스스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10. 그래서 그의 마지막 조언은 사랑하는 일을 찾으려 애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대신 당신이 택한 일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말한다. ‘열심히’를 재정의하는 일도, 혁신을 끊임없이 훈련하는 일도, 어쩌면 이 한 문장으로 수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11. 나는 ‘혁신’과는 거리가 먼 쪽에 가까웠지만, 신사업에 내던져지고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결정을 해야하는 상황들이 주어지다보니, (여전히 혁신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새로운 일을 찾고 만들고 도전하는 것이 예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나에게 큰 변화 중 하나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믿지 않았는데, 30% 정도는 믿게 되었다.
  12. 나의 연료는 예전에 비해 많이 현실적이고 소박해졌지만, 예전과는 또 다른 이유로 내가 훈련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기획’이라는 꽤나 오랫동안 나를 불타게 했던 거창한 이유가 흐려져 방황하기도 했다. 지금은 ‘이 팀을 지키고 싶다’는 소소하고 확실한 이유가 나를 불타게 한다.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리더가 되는 것, 리더로서 팀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하는 것들을 고민하고 훈련하며 오늘도 ‘열심히’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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