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취준생들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고 한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에 AI를 얼마나 써야 적당한 건지, AI 활용능력은 또 어떻게 어필해야 하는 건지 감이 안 잡힌다는 것.
  2. 실제로 많은 JD에 ‘AI활용능력’이 필요하다고 쓰여있으니,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최근 채용을 진행하며 여러 지원자의 서류를 검토해보니, 뽑는 입장에서는 고민의 방향 자체가 조금 어긋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먼저 서류에 AI를 마음껏 쓰는 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너도나도 쓰다 보니 디자인도 구성도 비슷한 모양으로 수렴해 간다는 점. 성의 없이 짧게 쓴 자기소개서나 보노보노 PPT처럼, 예전 같으면 낙제점에 가까웠을 서류는 이제 없다. 전체적으로 상향평준화가 된 셈인데, 그 대신 다들 비슷해 보이기 시작했다. PPT를 조금 더 잘 만든다고 큰 플러스가 되지도 않는다. 껍데기를 만드는 능력으로는 더 이상 차이가 벌어지지 않는 셈이다.
  4. 반대로 이런 상황에서 채용담당자들은 ‘AI에 숨은 가짜’를 찾기 위해 더 눈에 불을 켜게 된다. AI로 만들어 낸 허울인지 아닌지 찾아내기 위해 더 꼼꼼하게 검토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다. 이미 몇 차례, 허울 좋은 서류에 속아 뼈아픈 채용실패를 겪은 경험도 있을 것이다.
  5. 취준생들이 오히려 신경 써야 할 건 두 가지다.
  6. 첫째는 내용물이다. 껍데기가 비슷해졌으니,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가 예전보다 훨씬 중요해졌다. 어떤 일을 맡았고, 그 안에서 어떤 판단을 했고, 결과는 어땠는지. 이런 내용은 결국 본인이 채워야 하는 영역이다. AI에게 통째로 맡기면 그럴듯하지만 누구에게나 쓸 수 있는 문장이 나오기 쉽다. 이 정도는 이제 채용담당자들도 쉽게 눈치챈다.
  7. 둘째는 꼼꼼한 검토다. AI로 만들고 고치기를 반복하다 보면 앞에서 나눈 맥락을 잃는 일이 의외로 잦다. 배경 정보가 통째로 빠지거나, 문장이 지나치게 축약되거나, 같은 말이 중언부언 이어지기도 한다. 채팅에서 오간 맥락이 본문에 딸려오기도 하고, 오탈자도 의외로 많다. 여기에 AI 특유의 말투는 이제 모든 국민이 어느 정도는 감지할 수 있는 수 있는 수준이다보니, 내가 직접 손대지 않으면 채용담당자는 모를 수 없다. 문제는 반복 작업에 지치다보니 검토를 덜 하게 되는 경우가 꽤나 많다는 것이다. 얼마나 티가 나는지 정작 본인은 잘 모르기도 하고.
  8. AI는 엑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엑셀을 못 쓰는 건 당연히 문제가 된다. (엑셀 할 줄 안다고 해서 뽑았던 인턴이, 화면을 스크롤해가며 손가락으로 데이터 개수를 세고 있는 장면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하지만 엑셀을 아주 잘 쓴다고 뽑히는 것도 아니다. AI가 없을 때에도 엑셀 함수를 몇 개 외우고 있는지, 매크로를 얼마나 잘 다루는지 내세우는 건 큰 의미가 없었다. 엑셀은 결국 수단이고, 그걸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느냐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시트로 번지르르하게 보일 수는 있어도 그게 곧 실력은 아니다.
  9. AI도 마찬가지이다. 못 다루면 뽑지 않을 이유가 되지만, 잘 다룬다고 해서 당연히 합격은 아니다. 그러니 ‘얼마나 써야 적당한가’라는 질문에는 애초에 정답이 없다. 많이 쓰면 의존적으로 보이고 안 쓰면 뒤처져 보이는, 그 애매한 균형을 맞추려는 것 자체가 방향이 틀렸다는 뜻이다.
  10. 개인이 AI를 쓰는 방식과 회사에서 실무로 AI를 쓰는 방식은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자격증 시험을 잘 보는 것과 실무에서 그 지식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하늘과 땅 차이인 것처럼, AI를 써봤다는 경험과 일의 성과로 연결하는 능력은 별개의 문제이다. 채용담당자는 AI를 써본 경험과, 그걸 얼마나 성과로 연결할 수 있을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11. 결국 중요한 건 AI를 얼마나 화려하게 다루는지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얼마나 잘 만들고 그 위에 AI를 어디에 어떻게 얹을지 스스로 판단하는 일이다.
  12. AI를 능숙하게 쓰는 사람보다 AI 없이도 자기 생각을 또렷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오래 가는 시대가 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적인 수학자들도 계산이나 암산은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계산보다 수학의 원리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다시 ‘나’로 집중되는 것이 아닐까.